멀쩡해 보이던 그 사람이 험담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우리는 살아가면서 겉보기에는 참 괜찮고 멀쩡해 보이는데, 입만 열면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험담을 일삼는 사람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인간관계의 윤활유 같은 가벼운 뒷담화인가 싶다가도, 시간이 갈수록 도를 넘는 부정적인 에너지에 피로감을 느끼게 되죠. 특히 육아 커뮤니티나 직장처럼 피할 수 없는 집단 내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인간관계에 환멸이 난다"는 생각까지 들기 마련입니다. 나민숙 작가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개인의 성품 문제를 넘어, 인간의 진화적 본성과 심리적 결핍의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오늘은 왜 평범한 사람들이 험담의 유혹에 빠지는지,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서 나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심층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 평범한 사람이 험담가로 변하는 심리적 메커니즘
나쁜 마음을 먹고 악의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진짜 악인'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대부분의 험담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관리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나민숙 작가는 험담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첫째는 '미성숙함'이고, 둘째는 '현재 삶의 불행'입니다.
미성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입을 놀립니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후자인 '불행한 상태'입니다. 사람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에너지가 고갈되면 심리적으로 '부정 편향'이 극대화됩니다. 평소라면 웃어넘겼을 타인의 작은 실수나 눈치 없는 행동이 송곳처럼 날카롭게 다가오는 것이죠. 내면에 쌓인 불쾌한 감정을 스스로 해소할 힘이 없을 때, 사람들은 타인을 비난함으로써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 혹은 "내가 화내는 것은 정당하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 합니다. 즉, 험담은 자신의 정당성을 부여받으려는 일종의 '비뚤어진 위로'인 셈입니다.
🧠 우리의 뇌는 왜 나쁜 소문에 더 끌릴까? '부정 편향'의 진실
인간의 뇌는 구조적으로 긍정적인 뉴스보다 부정적인 소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부릅니다. 수만 년 전 구석기 시대, 인류가 들판에서 생존해야 했던 시절을 떠올려 보십시오. "저 과일은 맛있어 보인다"는 낙천적인 생각보다 "저 과일에는 독이 있을지도 몰라"라고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개체가 살아남을 확률이 훨씬 높았습니다.
이러한 생존 본능은 현대에 이르러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타인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화목한 소식보다는 갈등의 소식을 더 빠르게 포착하고 기억합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이 생존 본능이 오작동하여 주변 모든 사람을 잠재적 위협이나 공격 대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험담을 즐기는 사람은 사실 자신의 뇌가 보내는 '불안 신호'에 압도당해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부정적인 대화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쉽게 형성되는 이유도, 인간의 뇌가 본능적으로 위협 요소를 공유하며 동질감을 느끼려 하기 때문입니다.
🛡️ 가족이 유일한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관계에서 환멸을 느낄 때 많은 이들이 "다 끊고 가족하고만 지내면 안 될까?"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합니다. 하지만 나민숙 작가는 가족을 '유일한' 인간관계로 만드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가족은 인생의 최우선순위가 맞지만, 우선순위를 두는 것과 그것 하나만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인간관계는 일종의 근육과 같아서,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하면 가족 안에서의 소통 능력도 퇴화하게 됩니다. 사회적 관계가 귀찮아서 포기하는 태도는 결국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인내심을 잃게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가족에게 모든 정서적 의존을 쏟아부으면 가족 구성원들은 숨이 막히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적절한 거리감과 외부 자극이 있어야 오히려 가족 안에서의 화목함도 유지될 수 있습니다.
🔇 고립이라는 이름의 '흡음실'이 가져오는 위험
인간관계가 너무 고통스러워 혼자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작가는 '관계의 흡음실'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합니다. 완벽하게 소음이 차단된 방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평온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들리지 않던 내 심장 소리, 옷깃 스치는 소리, 심지어 장기가 움직이는 소리까지 적나라하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외부 자극이 차단되면 뇌는 스스로 자극을 만들어내기 위해 환청이나 환각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관계라는 외부 자극을 완전히 제거하면, 우리 시선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매몰됩니다. 자의식이 비대해지고 사소한 내적 갈등에도 예민해지며, 결국 정신적으로 더 취약해질 수 있습니다. 관계가 피곤하다고 해서 모든 연결을 끊어버리는 것은, 마치 빛이 싫다고 영원히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필요한 것은 '차단'이 아니라 '강도 조절'입니다.
🌱 현명한 거리 두기와 관계의 생존 전략
험담을 일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지금 삶이 몹시 불행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태'라고 이해해 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들의 부정적인 이야기에 동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저 사람은 지금 자기 내면의 불을 끄기 위해 남에게 물을 끼얹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한 걸음 물러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모든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결심보다는, 나에게 유익한 자극을 주는 관계를 소수라도 남겨두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책 한 권을 읽거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도 좋은 자극이지만, 인간이라는 생동감 넘치는 자극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나를 갉아먹는 관계는 과감히 '쉬어가기'를 선택하되,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은 보존해 두십시오.
🚀 나를 지키는 주체적인 관계 맺기
험담은 인간 본성의 일부이자, 나약한 자아의 비명입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남 욕을 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내면 시스템이 고장 났다는 신호일 뿐 당신이 그 오염된 감정을 받아낼 이유는 없습니다. 인간관계의 피로함에 압도되어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보다, 적절한 거리 조절을 통해 나만의 심리적 방어선을 구축하십시오.
가족을 소중히 하되 외부 세계와의 끈을 놓지 않는 것, 그리고 타인의 부정 편향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긍정 에너지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 이것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정신적 건강을 지키며 품격 있게 살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관계의 '자극'을 성장의 '동력'으로 바꾸는 주체적인 삶을 응원합니다.